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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한국 퀼트의 개척자 김미식 동문, 한 장의 천이 동반자가 되기까지

  • 조회수 20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6-23
  • 퀼트 작가 김미식 동문(의류학과 78졸)


"주입식으로 남을 쫓아가기만 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니까요"


2023년 한국공예가협회 '올해의 공예인상'을 수상한 한국 퀼트계의 개척자 김미식 동문(의류학과 78졸). 그는 국내에서 예술 퀼트(Art Quilt)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퀼트의 길을 걸어왔다. 


한 장의 천에 담아낸 한국적 정서와 독창적 기법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은 그는 현재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오랜 시간 실과 바늘로 세상을 개척해 온 김미식 동문의 작품 세계를 숙명통신원이 들여다봤다. 



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섬유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식이라고 합니다. 1978년 숙명여자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섬유를 전공한 이후 지금까지 섬유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직조와 바느질 작업을 겸했으나, 현재는 현대와 전통의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활용한 퀼트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국제적인 퀼트 협회인 SAQA(Studio Art Quilt Associates) 한국 지부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 동문님의 작품은 인간에게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옷, 그중에서도 옷에 사용되는 직물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오는데요. 퀼트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천'은 굉장히 익숙한 소재였어요. 오랜 기억 속에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바느질하는 모습이 남아있어 바느질이 가깝게 느껴지나 봅니다. 그러다 퀼트를 생활용품으로 인식하던 1980년대 말,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텍스타일 뮤지엄에서 처음 본 『Art Quilt전』이 퀼트의 길을 걷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의 감흥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마침내 1996년에 『Art Quilt전』이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됐어요.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Art Quilt'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섬유 작가로서 활동했습니다. 2004년에 도서 'Art Quilt'를 출간하기도 했어요.


「숙명 110주년 퀼트 공동제작」(2016) –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 전시 중.


3. 퀼트라는 작업 특성상 굉장히 천천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텐데요. 그 느림의 시간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는지 궁금합니다.


천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밀리지 않고 잘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천천히 쉬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 나가야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어요. 그 과정을 저는 명상이나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복적인 작업은 아무 생각 없이 작업에 집중하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곤 해요. 바느질로 작업하다 보면 내 자신이 변화하는 색상과 형태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4. 동문님의 최근 퀼트 작업 방향을 보면, 한글이나 백자를 소재로 활용하는 등 한국적 요소가 특히 눈에 띄어요.


숙명여자대학교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수업하고 있어서 한국의 미를 접할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미감이 제 삶에 녹아 들어, 작품에도 스며들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중앙 박물관에서 우연히 '달항아리'를 처음 봤을 때 한참이나 압도돼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어요. 오랫동안 그 당시의 마음을 간직만 하고 있다가 이를 주제로 작업을 했습니다. 모시와 삼베 등의 소재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탈색 기법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서 제가 느꼈던 그때의 감동을 표현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한글은 기하학적인 모양이지만 디자인이 현대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표현해보고 싶은 생각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선뜻 작업을 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작업을 했고, 더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달항아리」(2019)

5. 풍경부터 신앙적 메시지까지 동문님 작품의 주제 폭은 정말 다양한데요.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작품마다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특히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예전에 산 근처에서 살았을 때는 그 동네의 느낌이나 주변 자연환경을 영감으로 삼아 색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죠. 그러다가 생각의 단순화를 통해 작품도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기 시작했고, 근래에는 그와 더불어 한국적인 것을 가미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금보성아트센터 초대전에서는 한국적인 미와 윤회사상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6. 휴스턴의 국제 퀼트 페스티벌, 일본 도쿄의 퀼트 니혼, 지난해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앤 프란시스 풀러튼 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까지, 동문님의 퀼트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초대받고 있어요. 수많은 전시회를 거치며 선보인 작품 또한 다양할 텐데,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우선 「내 마음 안의 달항아리」라는 작품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납니다. 다른 작품보다 특히 한국적인 미가 굉장히 많이 드러나기도 했고, 최근까지 여러 나라를 순회했던 작품이라 그 가치가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삶의 이야기」라는 작품도 떠오르는데요. 기존 퀼트 기법이 아닌, 시접(* 옷 솔기 가운데 접혀서 들어간 부분)을 바깥으로 드러내어 뒷면을 입체적인 앞면으로 전환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여서 국내에서도, 외국에서도 신선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어요. SAQA에서 주관한 '-SAQA Presents: Modern Inspirations- Art Quilts from the 1970s through Today'에도 선정돼 약 5년간 전 세계에 전시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제 작품이 권위 있는 전시에 초대받아 세계를 돌면서 마치 개척자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 매우 뿌듯해요.


「삶의 이야기」


7. SAQA에서 한국 대표직까지 지내신 경력도 눈에 띄어요.


1980년대 말, 섬유 예술의 한 분야인 퀼트를 알게 되었고, 여러 잡지를 읽어보던 중 SAQA를 발견했어요. 그 협회의 일원으로 여러 콘테스트를 알게 되고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때마침 한국에서도 퀼트 붐이 일어났고, 당시 아시아 퀼트를 총괄하던 일본 작가의 추천을 받아 SAQA의 한국 지부를 만들게 됐어요. 그렇게 한국 대표로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국 퀼트를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8. 숙명여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퀼트 전문가 과정을 가르치고 있어요. 학부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숙명에서의 시간 중 퀼트 작가의 삶에 영향을 줬던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06년 숙명여대 100주년 기념 의류학과 전시가 청파갤러리에서 열려 졸업 30년 만에 선배의 마음으로 전시회 진행을 맡았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정영양자수박물관과 인연이 닿아 벌써 20년 가까이 퀼트 전문가 과정에서 수업하고 있어요. 다시 찾은 학교로의 발걸음을 계기로 현재 한국 퀼트계의 작가를 다수 배출하고 있습니다.


수업에서 많은 퀼트와 텍스타일 기법을 연구하고 실습하면서 제 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동시에 박물관에서 기획하는 여러 전시에도 참여하면서 퀼트에 담아낼 전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도 자주 생겼습니다.


「겨울 바람」(2021) – 2024 금보성아트센터 초대 기획전 전시


9. 오랜 기간 아트 퀼트 분야에 정진하는 동문님의 인생에서 퀼트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퀼트는 저의 생활이자 동반자예요. 매일 일상생활에서 잠깐이라도 바느질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 뒀다가 작품으로 실현함으로써 항상 퀼트와 붙어있는 것 같아요. 퀼트와 더불어 산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퀼트는 저에게 순전히 재미있는 일이고 그 재미에 다시 또 끌리게 되는 작업입니다.


10. 2023년에는 한국공예가협회 '올해의 공예인상'까지 수상하면서 다시금 한국 퀼트의 대가로서 인정받았는데요. 퀼트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저는 섬유 미술이나 퀼트 쪽에서 계속 활동을 해왔는데 올해 금보성아트센터 초대전에서 전시하며 미술에 종사하는 분을 많이 만났어요. 작품을 굉장히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제 작품과 현대 미술이 상당히 근접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이를 계기로 활동 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수업하는 공간은 이제까지의 작업과는 다르게, 혹은 더 나은 작업을 하길 바라는 분들이 오는 곳이에요. 이분들께 제 작업 노하우를 잘 전파해서 창작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습니다. 


11.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숙명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꿋꿋이 개척해 나가는 일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에 흥미를 갖는다며 이상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이 훗날 한 분야의 대가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저 주입식으로 남을 쫓아가기만 하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에요. 숙명여대 학생 여러분도 간절히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비록 주변인들의 의견에 반하더라도, 의견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추진하는 힘을 키우길 바랍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3기 서희(가족자원경영학과 24), 24기 한나림(법학부 25)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