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이 필요해? 재밌는 세계사 들려줄게" '역사 크리에이터' 이주은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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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6-27
- 작가 겸 유튜버 이주은 동문(영어영문학부 08) 인터뷰
'너희 그거 알아? 조지 1세의 부인이 어릴 적 첫사랑이랑 바람피우고 사랑의 도피를 떠날 뻔했대~!'
첫 문장만으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 이런 흡입력 있는 글을 쓰는 이는 바로 이주은 동문(영어영문학부 08)이다.
그는 학교 커뮤니티 '스노로즈'에서 시작해 블로그 '눈숑눈숑 역사탐방'에서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는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알렸다. 재학 중 중세 유럽 사람들의 일화를 담은 『스캔들 세계사』를 출간했고, 이후로도 『은밀한 세계사』,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 여러 책을 썼다.
현재는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역사를 한 편의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는 이주은 동문의 발자취를 숙명통신원이 따라가봤다.
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어영문학부 08학번 이주은입니다. 학교 커뮤니티인 '스노로즈'에 재미 삼아 쓰기 시작한 역사 이야기를 블로그로 확장하고, 블로그의 글을 엮어 '드라마 같은 인물과 에피소드로 읽는 서양사'라는 주제로 『스캔들 세계사』를 출간하며 역사 작가의 삶을 시작했어요. 관련 기사
이후에도 꾸준히 역사 관련 글을 쓰다가, 유튜브 '눈숑눈숑 역사탐방 – 스캔들 세계사' 채널을 개설해 2년 만에 실버버튼(구독자 10만명)을 받았어요. '돈보다 내가 재미있는 걸 하자'는 신조 아래 글과 영상, 강연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주은 동문의 어린 시절
2. 동문님은 글쓰기의 원천이 '다독'이라 밝힐 만큼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셨어요. 지금의 동문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이고, 그 책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미친 영향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책은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제인 에어』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극적인 전개와 인간의 감정이 얽힌 막장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걸 재미있어하죠. 제 콘텐츠도 주로 한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그 사람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을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십자군 전쟁을 다룰 때도 전쟁의 원인이나 전개보다는, 그 전쟁 속에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요. 결국 역사는 수많은 개인의 삶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대외적으로는 대단한 정복자지만 아내에게는 최악의 남편일 수 있죠. 사람은 각자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역사 속 인물에게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만약에'라는 전제를 두고 역사를 재구성해 보기도 해요.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입학했다면?' '내가 고종이었다면?' 같은 상상은 독자가 역사를 더 친근하게 느끼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3. 스노로즈에서 연재한 역사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블로그로 확장하게 됐는데요. '드라마같이 재밌는 역사'를 다룬다는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스노로즈는 서로 반말로 소통하는 커뮤니티라서, 친구들에게 웃긴 '썰'을 들려주듯이 쓰다 보니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너희 그거 알아~? 루이 14세가 이빨을 다 뽑고 입천장이 뚫려서 악취가 심했대!'라는 식으로 친구랑 대화하듯이 쓰니까 저도 즐겁고, 보는 분들도 더 친근하고 재밌게 봐주시더라고요. 사실 연표나 사건들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쉽게 알 수 있잖아요. 저는 단순한 사실보다는 그 안에 담긴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집중해요.
예를 들어, 헨리 8세와 목 잘린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교 개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영국의 종교 개혁은 영국 교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독립한 사건이에요. 헨리 8세가 두 번째 부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에게 전 부인과의 결혼 무효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합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헨리 8세는 영국 교회의 수장은 이제부터 바티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선언하죠.
하지만 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 8세의 총애를 잃었고, 결국 런던 탑에서 참수당하며 생을 마감했어요. 둘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도적인 교리를 만들고 영국 교회를 이끌었죠. 어때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알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나요?
4. 재학 중에 첫 저서를 출간하며 학교생활과 집필, 블로그 운영까지 정말 바쁜 대학 생활을 보냈을 텐데요. 숙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요?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역사책을 쌓아두고 읽었던 게 기억나요. 친구들은 시험공부는 안 하냐며 걱정했지만, 당시에 저는 일주일에 한 편씩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서양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외국에서 출간된 책을 이북으로 많이 읽었어요.
5.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를 비롯해 『은밀한 세계사』,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까지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꾸준히 집필하고 있는데요. 책의 내용을 구성할 때 주로 어떤 점을 신경 쓰시나요?
한 국가에만 치우치지 않고 서양 내에서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해요. 주제도 패션, 불륜 등 다양한 테마를 넣어 한 주제에 편향되지 않게 하죠.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주제와 관련된 책이나 논문, 저널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자료를 서로 비교하며 정확한 정보를 확인합니다.
이주은 동문의 저서.
6. 2020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영상으로도 역사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요. 한 편의 영상을 완성하기까지의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먼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요. 한국에서 아직 많이 다뤄지지 않은 주제라면 더 좋아요. 조회수가 나올지 아닐지는 어느 정도 예상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조회수에 연연하기보다는 완성도 있는 나만의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사람들은 따라오리라 생각해요.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는 2주 정도 걸려요. 먼저 대본을 작성하고 나레이션을 녹음합니다. 다음으로 내용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는데, 시대상 고증이 미흡한 경우는 해당 시대가 배경인 영화 예고편이나 당대의 그림, 삽화를 활용해요. 적합한 이미지를 넣어 영상 편집을 마치면 제목을 정하고 썸네일을 만들어요.
7. 동문님의 유튜브를 보면 '스펙 미달 공주가 프랑스 왕비로 취뽀 성공한 비결은?',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했던 주교가 살해됐다!'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 눈에 띄어요.
저는 영상의 제목을 정하는 데 가장 공을 들여요. 특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제목으로 쓰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해요.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끄는 적당한 길이의 제목을 찾기 위해 여러 번 고치고 고민하죠.
8. 동문님의 콘텐츠는 '세계사 버전 가십걸'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요. 만약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큰 인기를 끌 것 같은 역사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조피 도로테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요. 조피의 아빠는 독일 하노버 공작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을 거부하며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기고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그는 조그만 공작령을 받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프랑스 하급 귀족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국 귀천상혼을 하게 됩니다. 귀천상혼이란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때는 불이익이 존재하는데 바로 둘 사이에서 낳은 자식, 즉 조피는 후계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피에게 좋은 혼사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조피의 아빠와 혹시 모를 재산 상속 과정에서 분란을 막으려는 동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조피와 사촌 게오르크의 결혼이 일사천리로 추진됩니다. 권력을 가진 아버지 아래 외동아들로 자라 고집이 세고 성격이 괴팍한 게오르크의 성정을 익히 아는 조피는 이 결혼 소식을 듣고 쓰러지고 말죠. 아니나 다를까, 게오르크는 슬하에 두 명의 아이를 두었음에도 바람과 폭행을 일삼는 폭력적인 남편이 됩니다. 여기에 고된 시집살이까지 더해져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조피는 해외로 떠났던 첫사랑 필립과 우연히 재회하고,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둘은 연애편지를 몰래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 나갑니다.
조피 도로테아와 아이들(왼쪽), 조피의 남편 게오르크(오른쪽)
9. 결국 그 둘은 어떻게 됐나요?
필립과 조피는 끝내 도망칠 결심을 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혀 한 번만 더 안아보고 싶다는 조피의 말에, 필립은 저녁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실종되고 말아요.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게오르크에게 둘의 관계가 발각돼 성에서 나오자마자 필립은 살해되고 성 뒤의 강에 버려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부정을 저지른 아내는 사실상 남편이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피는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30년이 넘는 세월을 성안에 갇혀 살게 되죠. 죽기 전 조피가 남긴 편지에는 '죽어도 남편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적혀있었다고 해요. 여기서 남편 게오르크가 바로 영국의 왕 조지 1세입니다. 조피의 비극적인 삶이 언제 한 번쯤은 드라마로 제작되지 않을까요?
10. 네이버 파워블로거이자 구독자 1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역사 이야기꾼'이에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비법이 있나요?
전쟁, 혁명, 서약처럼 복잡한 이야기는 짧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1871년 지정한 서약에 따라~'보다는 '윌리엄이 만든 법에 따르면~'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에 법률 이름만 간략하게 띄우는 식으로 쉽게 말하면서도 본질은 놓치지 않죠. 무엇보다도 제 영상을 틀어놓고 설거지하거나, 출퇴근 중에 듣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공부'가 아닌 드라마 요약본 한 편을 보듯이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있어요.
때로는 너무 단순화한 게 아닐지 고민도 되지만, 저는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는 첫 단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은 알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생각보다 역사 재밌네?'라는 감정만 남아도 성공이라고 믿습니다.
라디오 국군방송 세계사 코너를 진행 중인 이주은 동문(왼쪽)
11. 동문님이 추천하는 역사 명소는 어디인가요?
영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런던 박물관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오직 런던이라는 도시의 역사만을 깊이 있게 다룬 박물관이에요. 전시가 꼼꼼하게 잘 구성돼 있어서 천천히 둘러보기만 해도 영국 역사를 한눈에 정리하는 느낌이 들죠. 대영박물관은 관광객이 많아 북적이지만, 런던 박물관은 비교적 조용하고 주로 현지인이 찾는 곳이라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어요.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곳은 런던 탑이에요. 겉보기엔 멋진 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치적인 사건이 많이 얽힌 장소입니다. 왕들이 대관식 전에 머물던 곳이자,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인물이 갇히거나 처형당했던 곳이죠.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불린이 이곳에서 처형됐고, 어린 왕 에드워드 5세가 사라진 미스터리한 장소이기도 해요. 비밀과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라,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가면 훨씬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어요.
12. 앞으로 동문님은 어떤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MBTI 즉흥형인) P라서 그런지 인생을 딱 정해진 계획대로 살기보다는 그때그때 발길 닿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편이에요. 앞으로 만들 영상의 소재는 어느 정도 정해뒀지만, 어떤 순서로 풀어낼지 계속 고민 중입니다. 마치 조각조각 떠오른 이야기를 한 폭의 그림으로 엮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또,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 들려주는 ASMR 버전의 역사 이야기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콘텐츠를 구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말과 글, 영상이라는 여러 색의 물감으로 역사라는 그림을 더 쉽고 재미있게 그려나가고 싶어요.
취재: 숙명통신원 23기 서예린(문헌정보학과 24), 24기 이예린(영어영문학부 24)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