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공예가에서 로봇 디자이너로…인간과 로봇 잇는 에이로봇 대표 엄윤설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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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7-04
- 에이로봇 대표 엄윤설 동문
금속 장신구를 만들던 공예가가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든다. 움직이는 예술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허무는 로봇 디자이너 엄윤설 동문(공예가 95) 이야기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에이로봇' 대표인 그는 단순히 로봇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로봇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고민한다.
그에게 로봇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를 메우는 협력자다. 엄윤설 동문이 바라보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과 미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봤다.
1. 예술과 로봇은 언뜻 보기엔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데요. 공예를 전공하고 로봇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금속 공예를 전공하고 장신구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던 중 운명 같은 계기가 찾아왔죠. 당시 남편이 다니던 '로보티즈'라는 회사에서 로봇 디자인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잠시 아르바이트로 참여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로봇이었는데, 레고처럼 보이던 그 로봇이 모터를 연결하자 스스로 걷기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만든 것이 움직인다'라는 경험에 완전히 매료됐고 그 순간부터 움직이지 않는 물건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가 가장 잘 아는 재료인 '금속'과 새롭게 빠져든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결합하게 된 거죠.
2. 예술을 전공했기에 기존 연구자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로봇을 바라볼 수 있다고요.
로봇 공학자들은 보통 '로봇이 인간의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히 반응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요. 하지만 '인간이 로봇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도 중요한 질문이죠. 저는 미술을 전공한 덕분에 로봇을 단순한 기술적 대상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HRI(Human-Robot Interaction, 인간-로봇 상호작용) 분야에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더 섬세하게 풀어갈 수 있었죠.
지능형 감성로봇(EDIE)
3. HRI 기술이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에서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지 설명해주세요.
HRI는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기술이에요. 사람이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를 포함하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제를 통해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감성 로봇 '에디'를 개발하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 적이 있어요. 관객 한 명과 로봇 한 대가 짝을 이뤄 공연에 참여하는 구조였는데, 우주기지 폭파 장면에서 한 아이가 자신의 로봇을 온몸으로 감싸안으며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짧은 시간 안에 정서적 반응이 생겼다는 점이 놀라웠고, 무엇이 그런 교감을 가능하게 했는지 궁금해졌죠. 그때 깨달았어요. 로봇의 움직임, 소리, 외형 같은 요소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었고, 그게 바로 HRI의 핵심이라는 것을요.
4. 지금까지 다양한 로봇을 디자인하면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로봇은 무엇인가요?
로봇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모두 자식 같은 존재예요.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이 가는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 '엘리스' 시리즈인데요. 엘리스는 저희 회사가 자체 브랜드로 꾸준히 개발해 온 이족보행 로봇입니다. 회사 이름인 '에이로봇'은 말 그대로 로봇 한 대를 의미해요. 인간이 하는 다양한 일을 하나의 로봇으로 수행하려면 결국 사람과 유사한 형태와 움직임을 갖춘 휴머노이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그 철학을 담아 만든 로봇이 엘리스이고,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컵을 쌓는 엘리스
5.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엘리스' 4세대가 출시됐어요. 휴머노이드만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작업에 폭넓게 대응할 수 있는 '범용성'이에요. 기존 로봇이 특정 기능에만 특화돼 있었다면, 휴머노이드는 요리, 청소, 물류 등 다양한 환경에 유연하게 투입될 수 있죠. 엘리스 4세대는 이전보다 보행 속도와 반응성이 한층 더 정교해졌고 완성도도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6. 인간과 매우 유사한 외형의 로봇이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디자인할 때 이러한 점은 어떻게 고려하나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대상에 친밀감을 느껴요. 저희도 머리와 눈 등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반영해 로봇을 디자인합니다. 하지만 그 유사성이 지나치면 오히려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어요. 특히 아직은 실리콘 피부처럼 생기 없는 인조 소재가 사람에게 공포감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외형은 사람과 비슷한데 움직임이 어색하거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죽은 것 같다'라는 반응이 나타나죠. 이런 현상을 '불쾌한 골짜기'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인간을 무조건 흉내 내기보다는 로봇답지만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는 균형 잡힌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어요.
7. 동문님은 앞으로 한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과거 드론이나 로봇청소기처럼 한때 국내 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이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무너진 사례가 많아요. 휴머노이드 시장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저는 이를 '원숭이 꽃신 전략'이라 부르는데요. 처음에는 저렴하게 공급해 시장을 장악한 뒤, 사용자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죠.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해외에 진출하기보다 국내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5천만원대'라는 목표 가격을 정하고, 그에 맞춰 기술을 최적화하고 있어요. 한국 소비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자국산 로봇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글로벌 경쟁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8. 동문님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파트너라고 했는데요. 앞으로 로봇이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나요?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없어 멈출 위기에 놓인 산업이 많아요. 특히 중소 제조업처럼 기피 분야는 인력난이 심각하죠. 저는 로봇이 반복적이고 고된 일, 고령자 돌봄처럼 꼭 필요하지만 기피되는 영역에 투입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하려는 사람이 부족한 일이니까요. 결국 로봇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는 자리를 메우는 협력자예요. 그런 의미에서 로봇이 사회를 함께 지탱하는 존재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9.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를 앞두고 사람들이 고민해 보면 좋을 질문이 있다면요.
로봇은 '해야 할 일'을 수행해요. 존재 목적 자체가 인간이 시키는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데 있죠. 그렇다면 로봇이 하지 못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잉여'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 그저 놀고 쉬는 시간처럼 겉보기엔 쓸모없어 보여도 인간에게는 필요한 순간들이 있잖아요. 로봇은 그런 시간을 갖지 않죠. 앞으로는 '안 해도 되지만, 하면 좋은 일'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거예요. 저는 이 잉여의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그 영역이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10. 로봇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로봇을 공대생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로봇은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분야예요. 로봇이 인간 사회에 들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시각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전공과 관점이 곧 로봇의 미래가 될 수 있어요. 로봇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함께 살아갈 존재로 바라보며 각자의 시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시길 바랍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3기 윤지원(테슬전공 22), 24기 조성연(자유전공학부 25)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