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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특별하고 흔하지 않은 책을 평생 만들고 싶어요” 출판사 녹색광선 대표 박소정 동문

  • 조회수 1023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4-03-06


  • 출판사 녹색광선 대표 박소정 동문(국어국문학과 95) 인터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특별한 녹색광선 같은 책을 찾아다니죠”


흔히 고전 소설이라고 하면 잘 알려진 작가의 유명한 작품을 떠올린다. 하지만, 박소정 동문(국어국문학과 95)은 대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즉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인 ‘녹색광선’ 같은 책을 출간하며 고전 소설의 매력을 알린다.


다른 사람에게 책 권하는 일을 즐겼던 박 동문은 모 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출판 분야에 뛰어들었다. 책을 좋아하던 학생에서 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표로 성장한 박소정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담아보았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출판사 ‘녹색광선’ 대표로 문학 분야 책을 만들고 있는 박소정입니다.


2. 출판사 ‘녹색광선’을 소개해주세요.


출판사 ‘녹색광선’은 무국적성(無國籍性,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가지지 않은 성질)을 추구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가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을 출판하는 콘셉트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녹색광선에서 출판한 책

3. 출판사 이름은 왜 녹색광선으로 정했나요?


1986년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녹색광선’ 말미에서 두 주인공은 특별한 자연현상인 ‘녹색광선’을 만납니다. 녹색 광선은 해 질 무렵 대기의 상태, 습도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관측되는 녹색 빛인데요. ‘함께 녹색 광선을 본 사람들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요. 영화 속 장면과 전설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내 속마음을 대변하는 녹색광선 같은 특별한 책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했어요. 애서가를 위한 ‘특별하고 흔하지 않은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 출판사의 이름을 ‘녹색광선’이라고 정했습니다.


4.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전에 다른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저만 읽기가 아깝다거나 혹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책을 직원들에게 추천했어요. 당시 ‘제가 권하면 사고 싶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세일즈에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어요. 퇴사를 결심했던 시기인 2016년경에는 1세대 작은 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관련 수업도 들으며 서점 창업을 준비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어요. 인사팀 직원이었던 저는 외근이 거의 없었는데 서점을 하게 되면 또다시 한 공간에만 머물러야 해서 활동 반경이 제한돼요. 결국 서점 창업을 하는 대신 출판사 창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5. ‘녹색광선’에서 다루는 글은 고전 소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인지도 없는 작은 출판사가 시장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을 만들더라도 굉장히 수준 높은 작품을 출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생 출판사가 살아있는 유명한 작가의 원고를 수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방법을 찾던 중 ‘고전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고전 소설은 퍼블릭 도메인(저작권이 풀린 작품)이 많고, 오랜 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미 작품성과 대중성을 검증받은 작품이잖아요. 이보다 더 좋은 원고가 있을까요?


녹색광선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한 조르주 페렉의 책 '보통 이하의 것들'


6. 독자 중에는 ‘녹색광선’ 책의 디자인 때문에 수집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녹색광선 책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패브릭 양장’과 ‘표지’입니다. 패브릭은 단가가 비싸고 수작업이 많이 필요해 처음에는 외국 서적 예술 코너에 가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첫 번째 책인 ‘미지의 걸작’은 출판사의 아이덴티티인 ‘녹색’ 패브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현대 예술에 대한 압축적인 이야기를 다루기에 출판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후속책 또한 작가와 작품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컬러를 선정해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초기 책들의 표지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린 크로키입니다. 이전에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잃어버렸던 감성을 다시 불러오고 싶어 창업 준비기간 동안 크로키를 배웠어요. 표지에 넣을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제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어느 독자님께서 ‘북 디자인이마치 사울레이터(Saul Leiter, 미국의 사진작가)의 사진 같다’고 해주셨는데요, 이처럼 독자들이 저희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성을 제일 잘 이끌어낼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표지에 배치하고 작가와 작품의 색깔에 맞는 패브릭 양장으로 책을 디자인하는 것을 녹색광선 북 디자인의 기본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7. 출판 과정에서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세 번째 책을 준비할 때, SNS에 ‘판매 지수가 만 점이 넘으면 보드카를 한 번에 마시겠다’는 공약을 올렸어요. 그 책은 러시아 작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의 ‘눈보라’였습니다. 명동 롯데백화점에 푸시킨 동상이 있는데 직접 그 동상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책 뒤에도 동상 사진을 넣어 홍보했어요. 일주일 만에 판매 지수가 만 점을 넘어 정말로 보드카 원 샷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렸답니다. 제가 출판 업계에 오래 근무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새로운 관점의 이벤트를 아직까지는 놀이하듯 즐겁게 기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8. 출판사를 창업하기 전부터 문학덕후로 불렸는데, 수많은 책 장르 중 문학을 가장 좋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좋은 문학은 놀랍고도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데, 이는 특이한 인물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효용성이 없는 것을 효용성 있게 만들어주는 장르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 이야기 속에 투영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게 됩니다.


9. 평소 책 권하기를 즐기는 동문님이 직접 후배들에게 고전 책 하나를 추천해주세요.


수많은 소설 중 단 한 권만 추천한다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흥미진진한 주요 인물 4명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과 사건을 경험하게 되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 시도해 보기 때문이죠. 


이 고전의 주인공들 또한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연애의 시작부터 죽음까지 다 다루고 있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중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를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만들어요.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깊이 남는 책입니다.


10. 한 잡지사의 ‘왓츠 인 마이 백’ 콘텐츠를 보니 가수 아이유의 가방에 녹색광선의 책 ‘패배의 신호’가 들어있어서 화제가 됐어요.


이 사실을 독자님께서 알려주셔서 알게 됐는데요. 재밌었던 부분은 아이유 님이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원래 가져와야 하는 책이 아닌 저희 책(패배의 신호)을 잘못 가지고 오셨던 거예요. 책이 재미있어서 읽다가 들고 와 버렸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짧은 순간 동안 영상에 노출됐지만, 그 이후에 새로운 한 쇄를 더 찍을 만큼 파급력이 있었어요. 아이유 님께서 글로벌 아티스트다 보니 해외 독자들이 인스타그램 디엠을 통해 제게 영어나 베트남어로 구매 가능 여부를 물어보셨죠. 아쉽지만 해외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참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11. 숙명여대 재학 시절에 했던 활동 중 현재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저는 도서관에서 조용하게 책 읽는 거 좋아했던 학생이었어요. 90년대는 작가주의 영화의 황금기이기도 해서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그때 본 영화나 책이 취업에 도움을 주진 않았겠지만, 독자들이 말하는 녹색광선 책의 감성은 그때 봤던 영화나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책 표지로 사용한 사진에 이때 본 영화의 장면을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전공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경험을 했던 것이 결국에는 나중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12. 녹색광선이 추구하는 앞으로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출판사 녹색광선은 지속해서 문학작품을 출간할 것 같아요. 어느 작가님께서 녹색광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무국적성’이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 작가님들의 작품도 출간하고 싶어요. 확실한 콘셉트랑 영역을 정한 후 작가님들을 섭외해서 시리즈로 구성할 것 같아요. 브랜드와 연결성을 가지고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해야겠죠.


13. 출판이나 도서 분야 진출을 꿈꾸는 숙명여대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부터 출판 산업 쪽에서 경력을 쌓아 창업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먼 길을 돌아왔어요. 독자로서 오래도록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무엇을 좋아할까를 항상 생각하며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야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저는 문학작품을 출간하고 있지만 인문, 철학, 자기 계발까지 그 분야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면 그 범위로 축소해서 창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생활을 경험해 본 것도 창업과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조율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즉 조직 생활을 경험했던 것이 혼자 창업해서 꾸준히 성과를 내며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줬거든요. 계획 없이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인생의 색다른 경험을 쌓는 것이 젊은 시절에는 필요한 것 아닐까요? 그때의 경험이 인생의 거름이 되어 미래의 여러분이 할 일에 안목과 자신감을 부여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2기 김규나(홍보광고학과 21),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 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