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국제 감식분석관 이지연 동문 "현장에서 결정적 증거 찾을 때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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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4-11-22
- 경찰청 경위 이지연 동문(법학부 04) 인터뷰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Every contact leaves a Trace)"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에 나오는 명대사다. 대학 시절 경찰을 목표로 꿈을 키운 이지연 동문(법학부 04)은 경찰이 된 후 CSI 과학수사대를 보고 과학수사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해 한국 최초로 국제 감식분석관 2단계 자격을 취득하고 사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지연 동문의 열정 넘치는 과학수사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봤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에서 현장 감식 업무를 하는 과학수사관 이지연 경위입니다. 동시에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법과학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이자 동국대학교 과학수사학 연계전공 겸임 강사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2. 동문님은 한국 첫 국제 감식분석관인데요. 국제 감식분석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
국제 감식분석관은 법과학 전반에 대한 지식과 현장 분석 능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이수하고, 관련 경력을 쌓은 과학수사관입니다. 법사진, 시체 현상, 독물 분석 등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제감식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Identification, IAI) 분석관 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가입니다.
IAI는 1910년대 미국에서 신원확인을 위해 경찰관들이 모여 세운 단체입니다. 역사가 아주 오래되고, 공신력 있는 협회라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미국에서는 과학수사관을 채용할 때, IAI 인증을 필수 또는 우대요건으로 두는 법과학 감정실, 경찰서가 대부분이에요. 법원에서도 감정인의 전문성을 요구하며 IAI 인증이 법정 진술 자격요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법원에서 과학수사관, 감정인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고, 경찰도 2022년부터 IAI 현장 감식 인증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경찰청 미국 IAI 위탁교육 대상자로 IAI 법사진 교육을 수료한 이지연 동문.
3. 국제 감식분석관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복잡할 것 같은데요. 동문님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국제 감식분석관에는 총 3단계 자격 등급이 있어요. 제가 취득한 것은 2번째 단계인 국제 감식분석관 CCSA(Certified Crime Scene Analyst)입니다. 그 전년도에 1단계 자격인 국제 감식수사관 CCSI(Certified Crime Scene Investigator)를 취득했어요. 경찰청에서 IAI와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경찰청의 현장 감식 기초교육, 현장 감식 전문과정 또는 순천향대학교 법과학 대학원의 IAI 교육과정(training course)을 이수하면 교육시간이 인정돼요. 국제 감식분석관이 되기 위해서는 3년의 과학수사관 경력도 필요합니다.
4. 시험은 어떤 식으로 치러지나요?
IAI에서 지정한 영어 원서를 공부해야 해요. 2단계인 CCSA 시험은 4시간 동안 300문제를, 1단계인 CCSI 시험은 3시간 동안 200문제를 풀고 총점의 75% 이상을 얻으면 합격입니다. 번역 책도 있지만 어차피 시험 자체가 영어로 출제되기 때문에 저는 그 책을 보지 않고 영어로 공부했어요. 처음 1회독 할 때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후 전문 용어들이 눈에 익어 회독을 거듭할수록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근무 외 시간은 다 시험공부에 투자했어요.
5.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를 보며 과학수사관에 관심을 가지신 걸로 알고 있어요. 드라마 속의 과학수사관과 현실의 과학수사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드라마에서는 과학수사관의 모습이 미화돼서 그려지는 것 같아요. 드라마 속 경찰 장비들은 최첨단이고, 과학수사관은 슈퍼맨처럼 묘사되잖아요. 범인이 만진 곳에서는 지문이 무조건 나오고, 쪽지문을 컴퓨터로 검색해서 범인을 바로 특정하고, 범죄 현장에 아주 멋있는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고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지문이 잘 안 나오지 않고, DNA도 검출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공기도 안 통하는 *타이벡을 입고 땀 뻘뻘 흘려가면서 5~6시간씩 현장 감식을 하고, 편한 신발을 신고 있는데도 시체 부패액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거든요. 현실에서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고 감염도 우려되는 위험한 업무인데 드라마에서는 멋있게만 그려지죠.
일반 시민들이 저희에게 "왜 DNA나 지문이 안 나오냐"며 불만을 토로하면 속상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최근 콘퍼런스에서 만난 미국 과학수사관들도 똑같이 말하더라고요.
*타이벡(Tyvek): 보호복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사건 현장대응 훈련 모습.
6. 숙명에서 보낸 시간이 동문님의 꿈을 이루는 데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경찰이 되기 위해서 법학부로 진학했습니다. 주변에서 법조인을 꿈꾸는 선후배, 동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제 꿈은 확고했어요.
저는 과학수사 경력 채용이 아니라 일반 순경 채용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인지 채용시험과 승진시험 공부를 할 때, 그리고 수사업무를 할 때 제 전공이 매우 도움이 됐습니다. 경찰관은 항상 새로운 판례와 법률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법률 관련 업무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이해가 빠르더라고요.
7. 지금까지 맡은 사건 중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우울증을 앓는 30대 아들이 번개탄을 사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이 있어요. 형이 먼저 '동생이 이상한 것 같다'고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장애가 있는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사망한 사실을 모른 채 경찰이 집에 출동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먹으려고 사 온 햄버거를 복도에서 다 떨어뜨리고 우시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어요. 과학수사대에서 근무한 첫해였는데, 현장 감식과 검시를 끝내고 돌아올 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8. 감식분석관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장 감식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하거나 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을 때입니다. 사건을 성공적으로 재구성했을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던 중 마약 사건이라고 추정했는데, 감식 결과 실제로 마약 사건이라고 밝혀졌을 때처럼 말이에요. 아마도 이건 과학수사관뿐 아니라 모든 경찰이 저와 같은 생각일 것 같아요.
지난 8월 네바다에서 열린 미국 과학수사관들의 축제 IAI 콘퍼런스에서 경찰청을 대표해서 연구 발표를 했는데, 경찰관이자 연구자로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9. IAI 콘퍼런스에서는 어떤 연구를 발표하셨나요?
테이프에 유류된 잠재 지문을 현출하는 기법에 대해 발표했어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테이프는 중요한 증거물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주로 아크릴, 청테이프 등에 남겨진 잠재 지문을 현출하는 기법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미디어에서 보는 것만큼 쉽지는 않아요. 또한, 최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포장재로 많이 사용되는 종이테이프에 유류된 잠재 지문을 현출하는 기법은 연구된 바 없습니다. 그래서 석사생들과 함께 종이테이프의 접착 면과 비접착 면의 지문을 현출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10. 한국 첫 국제 감식분석관인 만큼 준비할 때도, 합격 후에도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어떻게 처음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냈나요?
전국에서 CCSA 시험 응시자가 단 2명밖에 없어서 떨어지면 정말 창피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경찰청 내부적으로는 응시자 명단이 공개되거든요. 부담감을 이겨내는 건 저 자신과의 싸움밖에 없었죠. 열심히 공부하는 것. 24시간 당직 근무 후에 퇴근하면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어요. 다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목표가 있으니까요.
합격 이후에는 제가 배운 것을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최대한 알려주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장이라는 건 한 번 들어가면 오염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첫발을 들일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현장 감식에 임하고 있습니다.
11. 과학수사관을 꿈꾸는 송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대학 생활을 할 때 이 길을 알려주는 선배가 있었다면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많은 숙명인이 과학수사대에 관심을 가지고 경찰청에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과학수사대는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다른 사건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 공부할 거리도 많기 때문이죠.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수사관도 경찰이라는 점입니다. 시민을 보호하고 사명감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직업이 경찰입니다.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서 단지 '멋있어 보여서'라는 이유로 과학수사관을 선택하면 경찰 입직 이후에 현실과 괴리감이 매우 클 거예요.
12. 앞으로 동문님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먼저 국제 감식분석관 3단계 CSCSA(Certified Senior Crime Scene Analyst)를 취득하고 싶어요. 현재 아시아에서 2단계까지 취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해요. 3단계를 취득한다면 이것 또한 한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준비 과정은 힘들겠지만, 그 과정이 추억으로 남고 보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 취득도 목표 중 하나입니다. 궁극적으로 법과학 관련 공부와 연구를 많이 하고, 과학수사관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직업을 거쳐 이 길을 왔지만, 이 꿈을 꾸는 학생들은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통해 도착하게 말이죠.
취재: 숙명통신원 22기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 22), 23기 조준희(정치외교학과 23)
정리: 커뮤니케이션팀